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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인간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교류의 수단이다. 그러나 인도 사회에서는 이마저도 카스트에 따라 분리되고 차별의 근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는 식사와 음식이라는 일상적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카스트 기반 차별의 현실과 그 문화적 의미를 살펴본다.
같이 먹을 수 없는 식탁, 보이지 않는 금기
전통적인 힌두 사회에서는 함께 식사한다는 행위가 단순한 친목을 넘어 사회적 평등을 상징하는 행위로 여겨졌다. 그만큼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신분을 인정하는 중요한 제스처였다. 이 때문에 카스트 간 식사 금기는 매우 엄격하게 지켜졌고, 특히 상위 카스트는 하위 카스트와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을 철저히 금기시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하위 카스트 출신이 만든 음식은 ‘불결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으며, 이들이 요리한 음식은 상위 카스트 사람이 먹을 수 없다고 여겨졌다. 사원 축제, 마을 행사, 결혼식 피로연 등에서도 하위 카스트 사람들은 따로 음식을 마련하거나, 별도의 공간에서 식사를 해야 했다. 심지어 같은 식탁에 앉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음식 문화는 단순히 개인적인 기호나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계층 질서를 식탁 위에 재현하는 상징적 행위였다. 하위 카스트 사람들은 자신이 먹을 음식과 타인이 먹을 음식 사이에 선명한 경계가 그어진 현실 속에서 성장하며, 식사 자리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인식해야 했다. 현대에 들어와 겉으로 드러나는 규범은 약해졌지만, 여전히 일부 지역과 공동체에서는 보이지 않는 음식 차별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일상 속에서 개인의 존엄성과 소속감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학교 급식, 직장 식당, 그리고 도시 생활 속의 음식 차별
카스트에 따른 음식 차별은 농촌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립학교 급식이다. 정부는 모든 아동에게 무상 급식을 제공하고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하위 카스트 학생이 음식을 준비하거나 배식하는 경우, 상위 카스트 학생들이 식사를 거부하거나 따로 도시락을 가져오는 일이 발생한다. 또한 학교 급식 담당자가 하위 카스트 출신이라는 이유로 교체 요구가 들어오거나, 급식소 자체를 별도로 운영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불만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무력화시키는 차별적 행동이다. 직장 내 식당에서도 미묘한 차별이 존재한다. 하위 카스트 출신 직원은 비공식적으로 ‘같이 앉아 식사하기 꺼려지는 사람’으로 분류되거나, 식사 자리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있다. 중요한 비즈니스 점심이나 사내 네트워킹 기회에서 이런 차별은 더욱 심각하게 작용하며, 결과적으로 직장 내 기회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도시 생활에서도 음식 문화 차별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일부 레스토랑에서는 특정 지역 출신, 특정 성씨를 가진 사람들에게 불편한 시선을 보내거나, 입장을 제한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결혼 중매 시장에서도 ‘순수한 음식 문화’를 강조하며, 특정 카스트만 특정 음식을 준비하거나 먹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음식은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체여야 하지만, 인도 사회에서는 여전히 신분을 구분하는 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모두가 같은 식탁에 앉기 위한 변화
음식 앞에서 평등을 실현하는 것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사회 구조를 바꾸는 첫걸음이다. 이를 위해 우선 학교, 병원, 공공기관 등 공공 급식 시설에서 명확한 차별 금지 지침을 마련하고, 차별 행위에 대해 신속히 대응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급식 담당자와 교육자를 대상으로 차별 감수성 교육을 의무화하고, 음식 문화를 통한 무의식적 배제 행위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직장 내에서도 사내 식당 운영 방침에 ‘모든 직원이 동등하게 이용할 권리’를 명문화하고, 음식 관련 차별 사례를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지역 축제나 공동체 행사에서는 공동 식사 행사를 개최할 때, 참가자 배경을 묻지 않고 누구나 같은 음식을 같은 공간에서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작은 변화가 일상의 문화를 바꾸고, 점차 신분 없는 공동체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의 변화다. 누구와 함께 음식을 나누는가를 기준으로 인간을 평가하는 문화를 극복하고, 음식이 단지 생존이 아니라 연결과 존중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사회 전체에 심어야 한다. 모두가 같은 식탁에 앉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오늘 내 옆에 앉은 사람의 출신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따뜻한 음식 한 그릇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