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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차별, 카스트와 교통 수단에서의 경계

by 지식머니부자 2025. 4. 23.

카스트 교통 수단 이미지


교통은 인간의 일상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며, 이동의 자유는 곧 삶의 질과 직결되는 중요한 권리다. 그러나 인도 사회에서는 이 기본적인 이동권마저도 카스트에 따라 암묵적으로 구분되거나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는 버스, 기차, 택시 등 공공 교통수단에서 벌어지는 카스트 기반 차별의 현실과 그 사회적 함의를 짚어본다.

버스와 기차 안의 계층화된 공간

공공 교통 수단은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인도에서는 버스나 기차 안에서도 신분에 따른 차별이 은연중에 이루어진다. 특히 농촌이나 소도시에서는 하위 카스트 출신이 버스에 탑승했을 때, 상위 카스트 승객들이 자리를 피하거나 눈에 띄게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 일이 흔하다. 앉을자리를 찾아도 “거긴 앉지 마라”, “네가 앉을자리가 아니다”는 식의 발언이 나오는 경우도 있으며, 좌석을 강제로 뺏기는 일도 빈번히 발생한다. 기차의 경우, 2등석이나 3등석에서 이러한 일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달리트 승객이 침상칸이나 창가 자리에 앉는 것을 두고 다른 승객들이 항의하거나 역무원에게 자리를 바꿔 달라고 요청하는 일도 있다. 이처럼 좌석 배정이 자동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인식은 여전히 수작업의 위계 구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상위 카스트 승객이 달리트 승객이 타자마자 버스를 하차하거나, 그 차량을 아예 이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일도 있다. 운전사나 안내원이 이런 행동을 제지하기는커녕, 되려 하위 카스트 승객에게 눈치를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는 교통수단이 단지 물리적 이동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위계가 시각화되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택시, 오토릭샤, 앱 기반 교통에서도 지속되는 차별

공공 교통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이용하는 교통 수단인 택시나 오토릭샤, 최근 보급된 우버나 올라(OLA) 같은 앱 기반 차량 서비스에서도 카스트 차별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일부 운전자는 승객의 이름, 말투, 복장, 목적지를 통해 상대방의 카스트를 추정하며, 그에 따라 태도를 바꾸거나 아예 호출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달리트나 OBC(기타 후진 계층) 지역으로 목적지를 설정하면 호출이 취소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며,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특정 지역을 ‘비선호 지역’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는 물리적 위험 때문이 아닌, 해당 지역의 사회적 낙인이 반영된 결과이며, 그 피해는 해당 커뮤니티 주민 전체에게 돌아간다. 운전자 중 달리트 출신이거나 외모로 인해 하위 계층으로 오인된 경우, 손님이 노골적으로 무시하거나 목적지까지 도달한 후 정당한 요금을 지불하지 않으려는 시도도 벌어진다. 특히 여성 운전자나 동반 가족이 있는 경우, 경멸 섞인 말투나 불편한 시선을 경험하는 빈도가 높다. 앱 기반 서비스가 확산되며 표면적으로는 자동화된 구조가 만들어졌지만, 사회적 편견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차별이 공식적인 통계나 제도로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통 관련 정책은 이용률, 효율성, 배차 간격 등 기술적 요소에 집중되지만, 실제 이용자의 경험에 깔린 차별 구조는 수면 위로 드러나기 어렵다. 이는 곧 교통권이라는 개념이 아직 ‘보편적 권리’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두를 위한 이동권을 위해 필요한 변화

이동의 자유는 단지 거리를 이동하는 권리가 아니라, 삶의 영역을 확장하고 사회적 연결망을 형성하는 수단이다. 그 기본적인 권리가 출신 성분에 따라 제한된다면, 그것은 명백한 구조적 차별이며 사회의 건강성을 위협하는 요소다. 다행히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일부 주정부는 교통 서비스 민원 시스템을 통해 카스트 기반의 차별적 언행 신고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공공 교통 종사자를 대상으로 정기적인 인권 감수성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시민단체들은 ‘이동권도 인권이다’는 슬로건 아래 캠페인을 벌이며, 교통이 단지 기술의 영역이 아닌 사회 정의의 영역임을 알리고 있다. 앱 기반 플랫폼에서도 이용자 평가 시스템의 편향성을 줄이고, 탑승 거부 이유를 신고하면 제재가 가해지는 구조를 도입하는 등 플랫폼 차원의 개입도 이루어지고 있다. 운전자 역시 자기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도록 지원 체계가 강화되면서, 점차 이용자와 운전자 간의 수평적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교통 시스템을 단순한 인프라 개선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 통합과 연결성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누구나 같은 목적지를 향해 이동할 수 있는 권리, 그 안에서 존중받을 수 있는 권리야말로 진정한 ‘길 위의 평등’이다. 카스트 없는 도로, 존엄이 보장된 교통수단은 인도 사회가 향해야 할 필수적인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