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사회에서 달리트는 역사적으로 가장 심각한 차별을 받아온 계층이며, 그 일상은 여전히 수많은 제약과 불평등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겉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하루하루 속에는 차별, 배제, 생존의 긴장이 끊임없이 공존한다. 이 글에서는 달리트 가정의 일상생활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며, 이들이 겪는 현실과 삶의 전략을 조명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공간부터 다른 현실과 생존
달리트 가정의 하루는 여느 인도 가정과 다르지 않게 새벽녘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그들이 사는 공간은 이미 사회적 불평등의 상징이다. 많은 달리트 가족은 여전히 도시 외곽이나 마을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슬럼 혹은 저소득 주거지에 거주하며, 기본적인 주거 조건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수도와 전기가 불안정하거나, 위생 시설이 미비한 집들이 많아 질병과 안전 문제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물이나 연료를 구하는 데에도 불이익이 따르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공공 우물이나 펌프 사용이 제한되거나, 먼저 줄을 섰어도 뒤로 밀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특히 여성들은 이른 아침부터 물을 길어오기 위해 먼 길을 다녀와야 하고, 생리 기간 동안에는 금기시되는 행동이나 공간 제약을 경험하기도 한다. 위생 문제로 이어지는 이 고질적인 상황은 교육과 노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린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전부터 가사와 동생 돌보기를 도우며, 그 자체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빼앗는다. 학교에 간다 하더라도 또래 아이들로부터의 차별, 교사의 냉대, 급식에서의 분리 등은 학습 의욕을 꺾기 일쑤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일용직 노동, 청소 업무, 하수 처리와 같은 하위직종에 종사하며, 비정규직의 불안정성과 사회적 멸시를 함께 감당해야 한다. 하루의 시작부터 ‘차별에 적응해야 하는 삶’이라는 명제가 달리트 가정의 일상이다. 그들에게 평범함은 결코 쉽게 주어지지 않으며, 매 순간이 경계와 생존의 연속인 셈이다.
가정 내 일상과 공동체에서의 긴장
달리트 가정의 구성원들은 단지 외부 사회에서의 차별에만 직면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 내에서도 전통적인 성 역할과 계층적 위계가 존재하며, 여성과 아동은 이중 삼중의 억압을 경험한다. 여성은 생계와 가사를 동시에 책임지면서도 의사 결정권에서 배제되며, 가족 내 폭력과 사회적 침묵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은 단순한 가족 문제가 아닌, 계층적 박탈과 연관된 복합적인 사회 문제다. 종교 활동이나 지역 행사 참여에서도 달리트는 종종 배제되거나 눈치를 보아야 한다. 마을 사원에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고, 지역 회의에서도 발언 기회를 갖기 어렵다. 설사 공동체의 일원이더라도, ‘정해진 자리’ 밖으로 나가는 순간 보이지 않는 경고가 따르는 것이다. 이로 인해 달리트 가정은 공동체 내부에서도 고립감을 느끼고, 상호 신뢰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내부 결속이 강해지기도 한다. 같은 처지의 이웃들과 서로 자원을 공유하고, 차별 상황에 공동 대응하거나, 소규모 경제활동을 함께 꾸려 나가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자조모임(Self Help Group)은 가계 경제를 안정시키는 중요한 수단이자, 심리적 지지를 제공하는 네트워크가 되기도 한다. 일상의 불평등 속에서도, 달리트 가정은 서로의 존재를 기반으로 살아간다. 그들의 삶은 단지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니라, 주어진 조건 안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존엄을 지키려는 능동적 실천이다.
조용한 변화와 내일을 준비하는 힘
최근 몇 년 사이, 달리트 가정의 일상에는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정부의 복지 정책이나 교육 할당제, 청년 고용 정책 등의 지원이 점차 확대되면서 일부 가정에서는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거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신분 상승’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 사람의 성공은 가족 전체의 인식을 바꾸고, 마을 전체의 희망이 되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 또한 이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온라인 교육을 접하거나, 지역 기반의 전자상거래를 통해 소득을 올리는 달리트 가정도 점차 늘고 있으며, 청년층은 SNS를 통해 차별에 저항하고, 자긍심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일상에 개입하고 있다. 특히 여성의 변화는 눈에 띈다. 과거에는 사회 활동에 제약이 많았지만, 이제는 가정 밖에서 직업을 갖거나 NGO 활동에 참여하며, 가족의 경제력 향상과 동시에 공동체의 변화를 주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딸을 교육시키고자 하는 부모도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세대 간 인식 차이의 가장 긍정적인 결과 중 하나로 평가된다. 달리트 가정의 일상은 여전히 불평등과 투쟁의 연속이지만, 그 안에는 강인함과 끈질긴 삶의 의지가 녹아 있다. 외부의 시선으로는 쉽게 포착되지 않지만, 그들은 매일의 삶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으며,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일상의 누적이야말로 인도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가장 단단한 힘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