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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드러나는 카스트 차별, 그 조용한 폭력의 현장

by 지식머니부자 2025. 4. 23.

카스트로 인한 차별 관련 이미지


의료는 생명을 다루는 영역이며,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제공되어야 할 권리다. 그러나 인도 사회에서는 카스트 제도가 의료 서비스 접근과 치료 과정에서도 여전히 뿌리 깊은 차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글에서는 병원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차별 사례들을 통해, 제도의 그림자가 어떻게 생명을 다루는 공간까지 스며들었는지를 살펴본다.

진료실 앞에서부터 시작되는 차별

인도의 병원은 형식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실제 진료가 이루어지는 현장에서는 환자의 이름, 주소, 외모, 심지어 말투 등을 통해 카스트를 추정하고, 이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공공병원에서는 환자가 어떤 카스트 출신인가에 따라 진료의 우선순위, 대기 시간, 의료진의 태도에서부터 미묘한 차별이 시작된다. 달리트 환자들은 진료를 받기까지 더 오래 기다려야 하거나, 의사가 무성의하게 대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심지어 의료진이 신체 접촉을 꺼리거나, 검사 기구 사용을 꺼리는 경우도 있어 환자로서의 존엄을 침해당한다. 이러한 차별은 의료 결과의 질에도 영향을 미치며, 단순한 편견이 생명에 직결되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간호사나 병원 행정 인력이 노골적으로 차별적 언행을 하거나, 병실 배정 시 다른 환자들과 함께 배정하지 않는 등의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달리트 환자가 사용한 침대나 기구를 소독한 후에도 비워두거나 폐기처분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조치는 명백히 비과학적이며, 오로지 사회적 낙인을 반영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이러한 환경은 환자의 심리에도 큰 상처를 남긴다. 병원은 원래 위로와 회복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달리트 환자에게는 차라리 고통을 참는 것이 병원 방문보다 나을 수 있다는 절망을 남기기도 한다.

출산, 응급 상황에서 드러나는 구조적 불평등

특히 여성 달리트 환자들은 출산 과정에서 가장 극심한 차별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지역 공공병원에서는 달리트 산모가 병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복도에 방치되거나, 제때 진통을 도와주는 간호사의 손길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분만 후에도 위생 상태가 불량한 병동으로 분리 배정되며, 심지어 신생아 관리에서도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례가 보고된다. 응급실에서도 차별은 존재한다. 사고나 중증 환자가 급히 실려 왔을 때, 그 환자가 달리트 출신이라는 이유로 초기 응급조치가 지연되거나, 의사의 호출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일은 당사자에게는 생사의 기로에서의 판단이 되며, 심각한 후유증 또는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인권 침해다. 이처럼 단순히 병원에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평등한 의료를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은, 인도의 보건 정책 전체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의료 평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의료진이나 병원 환경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위계와 배타성을 유지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일부 민간 병원에서는 달리트 환자에게 진료비를 더 요구하거나, 병실 예약에서 뒷순위로 밀리는 등 경제적 차별까지 병행되기도 한다. 이러한 관행은 법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지만, 단속이 느슨하고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치유의 공간이 차별 없는 공간이 되기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있다. 일부 시민단체와 NGO는 지역 병원과 협력하여 의료진 대상 인권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특정 카스트 출신 의료진들이 달리트 커뮤니티를 위해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또한 SNS와 언론을 통해 병원 내 차별 사례가 공개되면서, 여론의 비판과 병원의 사과,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정부는 의료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에 인권감시관을 배치하거나, 차별 사례에 대한 익명 신고 시스템을 운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일부 의대에서는 학생들에게 카스트 관련 윤리 교육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의료계 전반의 인식을 개선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병원이 생명과 존엄이 존중받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이다. 출신이나 배경과 무관하게 누구나 아플 권리, 치료받을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의료는 혜택이 아니라 기본적인 권리이며, 그 권리는 평등하게 보장될 때 비로소 사회 전체가 건강해질 수 있다. 차별이 없는 병원, 신분이 아닌 인간을 먼저 보는 의료는 인도 사회가 진정으로 평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 우리 모두가 차별 없는 의료 환경을 만드는 데 더 큰 관심과 실천을 기울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