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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개인의 양심과 신념에 따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도 사회에서는 하위 카스트 출신들이 억압과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교를 바꾸는 순간, 또 다른 차별과 사회적 제약에 직면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카스트 제도에서 벗어나기 위한 종교 개종이 오히려 새로운 사회적 불이익으로 작용하는 구조를 살펴본다.
차별로부터 도피한 선택, 그러나 시작된 또 다른 배제
하위 카스트 시민들, 특히 달리트(Dalit) 계층은 오랜 세월 힌두교 내부의 위계질서 속에서 차별받아 왔다. 이에 일부는 자발적으로 불교, 기독교, 이슬람 등으로 종교를 개종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평등을 되찾고자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암베드카르 박사로, 그는 1956년 수십만 명의 달리트와 함께 불교로 개종함으로써 사회적 선언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 개종은 개인에게 해방이 아니라 또 다른 고립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많았다. 개종한 하위 카스트 시민은 원래 속해 있던 공동체에서 배제되고, 새로운 종교 공동체에서는 ‘달리트 출신’이라는 낙인으로 또 다른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 교회나 사원에서도 직분을 맡는 데 제한이 따르며, 진정한 수용보다는 형식적인 소속만이 허용되는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단절, 마을 공동체로부터의 추방, 생업의 상실 등 사회적 보복도 이어진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개종을 이유로 고용이 끊기거나, 공동 자원에서 배제되며 생활 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경우도 존재한다. 종교 선택이 자유로운 개인적 행위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통제를 받는 집단적 질서의 문제로 작동하는 것이다.
법제도의 이중 기준과 제도적 차별
인도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제도는 종교 개종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예약제(할당제, Reservation System)’ 적용 문제다. 달리트 출신이 불교로 개종하면 혜택을 유지할 수 있지만, 기독교나 이슬람으로 개종할 경우, 공식적으로는 ‘불가촉천민’으로서의 신분을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이로 인해 교육, 공공 고용, 정치 참여 등에서 제공되는 법적 보호와 기회를 박탈당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즉, 신분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종교 개종이 오히려 법적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는 종교 선택의 자유를 사실상 제한하는 제도적 역설을 만들어낸다. 또한 일부 주에서는 개종을 ‘강요’나 ‘기만’으로 간주하는 반전법(Anti-Conversion Law)이 제정되어, 특정 종교로의 개종 시 사전 신고 및 정부 승인 절차를 요구하고 있다. 이 법은 특히 하위 카스트 출신의 개종 사례에 집중 적용되며, 형식적으로는 종교 갈등 방지 목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카스트 기반 사회 질서 유지 수단으로 작동한다. 법적 보호를 위해 선택한 개종이 오히려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되고, 이는 개인의 양심과 신념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신앙의 자유가 선언적으로 존재할 뿐, 실제로는 제도적으로 차단되고 있는 것이다.
신앙 앞에서도 평등한 사회를 향해
종교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며, 그 선택으로 인해 사회적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 기독교·이슬람 개종자에 대한 예약제 적용 제한을 철폐하고, 출신 배경에 따른 차별이 아닌, 현행 신분과 사회경제적 상태에 따라 지원이 이뤄지도록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 또한 반전법과 같은 법률은 엄격한 심사를 통해 폐지되거나, 최소한 개종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개종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 선택이 되기 위해서는, 법률이 아니라 양심이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종교 공동체 내부에서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위 카스트 출신 개종자를 단지 ‘이전 신분이 무엇이었는가’로 평가하는 관행을 지양하고, 동일한 신도이자 구성원으로 존중하는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 종교는 차별의 반복이 아니라 치유와 포용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더불어 사회 전반적으로는 개종을 개인의 권리로 바라보는 태도가 정착되어야 한다. 특정 종교로의 개종을 사회 질서의 위협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개인의 자유 의지와 삶의 선택으로 존중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필요하다. 신앙은 구속이 아닌 해방이어야 한다. 종교는 차별의 이유가 아닌, 평등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카스트에서 벗어나기 위한 종교적 결단이 또 다른 차별의 문턱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신앙 앞에서도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