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문화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회적 도구다. 그러나 인도 사회에서는 언어와 억양, 말투마저도 계층적 위계의 기준이 되며, 카스트에 따른 차별의 도구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는 말하는 방식과 언어 습관이 어떻게 사회적 신분을 규정짓는 요소로 기능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언어 속에 숨은 위계, 사투리도 차별의 근거가 된다
인도는 수백 개의 언어와 방언이 공존하는 다언어 국가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의 다양성은 때때로 사회적 위계로 전환된다. 상위 카스트는 특정한 억양, 문법, 단어 선택을 사용하는 ‘정제된 언어’를 구사한다고 여겨지고, 하위 카스트는 거칠고 단순한 어휘, 지역 사투리를 사용하는 ‘천한 말’을 쓴다는 인식이 고착되어 있다. 예를 들어 북인도에서는 상위 카스트가 사용하는 힌디는 순수 산스크리트계 표현이 많고 억양이 부드럽다는 인식이 있으며, 반면 하위 카스트가 사용하는 힌디는 혼합 언어가 많고 강한 억양을 띤다는 이유로 무시받는 경우가 있다. 남인도에서도 특정 방언이나 억양을 사용하는 사람은 곧바로 지역과 계층이 드러나며, 이는 곧 사회적 거리감으로 이어진다. 심지어 특정 카스트는 전통적으로 말 자체를 할 수 없도록 통제되었던 시기도 있었다. 달리트가 공공장소에서 신성한 단어를 말하거나, 성직자 앞에서 음성을 높이는 것 자체가 ‘불경’으로 간주되어 처벌받던 과거는, 언어마저 지배받던 현실을 보여준다. 이처럼 말은 자유의 수단이 아니라 통제와 차별의 매개체였고, 오늘날에도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말투 하나로 판단받는 현실, 교육과 직장에서의 불이익
현대 인도에서는 겉으로 보기에 계층 간 차별이 줄어든 듯 보이지만, 말투와 억양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신분증명서로 작용한다. 특히 학교나 대학, 직장 면접과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말의 억양, 문법 오류, 발음 등을 통해 그 사람의 배경을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위 카스트 출신 학생이 유창하지 못한 영어를 구사하거나 지역 방언 억양이 강한 힌디를 사용할 경우, 교사나 동료 학생은 무시하거나 ‘수준 낮은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인식하곤 한다. 이는 학습 동기 저하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자신의 언어적 표현을 검열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말하는 방식 자체가 ‘틀렸다’고 평가되는 상황에서 자유로운 토론과 창의성은 발현되기 어렵다. 직장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진다. 인터뷰 과정에서 억양이나 표현력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사례는 많으며, 회의 자리 나 고객 응대 업무에서 말투를 이유로 배제되거나, ‘무례하게 들린다’, ‘세련되지 못하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한다. 이는 실력과 무관하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평가 기준이 되고, 그 기준이 사실상 카스트적 편견에 뿌리를 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일부 직군에서는 아예 특정 억양이나 말씨를 교육을 통해 교정하도록 요구하기도 하는데, 이는 언어를 통해 사회적 위계를 유지하려는 무의식적 구조를 보여준다. 말투 하나로 누군가는 ‘교육받은 사람’이 되고, 누군가는 ‘배움이 짧은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현실, 그 안에는 오래된 계층 인식이 숨어 있다.
언어 해방의 시작,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언어와 말투를 통해 사람을 판단하는 문화는 결국 개인의 표현 자유를 제약하고, 사회 전체의 다양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언어 사용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다. 특정 억양이나 말씨가 우월하다는 관념을 깨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방식대로 말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에는 다양한 억양과 방언을 활용하는 콘텐츠가 대중문화 속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팟캐스트 등에서 지역 방언을 그대로 사용하며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크리에이터들이 주목받고 있으며, 이는 언어적 자존감 회복과 지역 문화의 긍정적 재조명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교육 현장에서는 다양한 언어 사용을 존중하고, 학생들에게 ‘말투 교정’보다는 ‘표현의 다양성’을 가르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일부 학교는 다언어 환경 속에서 공존과 포용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언어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자산임을 인식하게 된다. 기업 역시 고객 응대나 조직 커뮤니케이션에서 ‘표준화된 언어’를 강요하기보다, 다양한 억양과 표현이 공존할 수 있도록 언어 다양성 교육을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내부 문화뿐 아니라 고객과의 소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언어는 곧 정체성이다. 말투 하나로 사람을 판단하고 배제하는 사회는, 결국 자기 자신조차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사회다. 말하는 방식에 평등을 부여할 때, 우리는 진정한 언어 해방의 시대에 들어설 수 있다. 그리고 그 출발은 ‘다르게 말하는 사람’이 아닌, ‘다양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