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기업은 능력과 성과를 기준으로 평가하고 보상하는 시스템을 지향한다. 그러나 인도 사회에서는 기업 내부에서도 카스트라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존재하며, 특히 승진과 리더십 기회에 있어 그 차별은 여전히 깊게 뿌리내려 있다. 이 글에서는 기업 내 승진 과정에서 벌어지는 카스트 기반 차별의 양상과 그 구조적 문제를 살펴본다.
공정해 보이는 평가, 그러나 다른 승진 출발선
대부분의 기업은 승진 심사나 평가 시스템을 ‘객관적’이라고 주장한다. 성과 지표, 근무 태도, 리더십 평가 등이 기준이 되며, 외형상으로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특히 하위 카스트 출신 직원은 입사 초기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힌다. 첫 번째 장벽은 ‘사회적 네트워크’이다. 기업 내에서 비공식 네트워크, 즉 멘토링, 추천, 정보 공유 그룹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상위 카스트 출신들이 자연스럽게 형성하는 경우가 많으며, 회식 자리, 사내 모임 등에서 차별적 배제가 은밀하게 이뤄진다. 이는 단순한 친목 문제가 아니라, 인사평가와 승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두 번째는 편견이다. 하위 카스트 직원은 같은 성과를 내더라도 "운이 좋았다", "지원 덕분이다"는 식의 평가를 받기 쉽다. 특히 리더십이나 대외적 역할이 필요한 포지션에서는 "조직을 대표하기에 부족하다"는 인식이 은연중에 작동하며, 승진 기회를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러한 차별은 문서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하위 카스트 직원이 일정 직급 이상으로 승진하는 비율이 현저히 낮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겉으로는 평등해 보여도, 실제 출발선은 다르고, 기회의 문은 결코 동일하게 열려 있지 않은 것이다.
비공식 관행이 만드는 보이지 않는 계단
기업 문화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비공식 관행은 승진 과정에서 또 다른 장벽이 된다. 예를 들어, 중요 프로젝트나 프레젠테이션 기회는 상위 카스트 출신에게 우선 돌아가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이력서 상의 실적을 쌓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위 카스트 직원은 주로 내부 지원 업무나 반복적 업무에 배치되면서, 전략적 경험을 쌓을 기회를 박탈당하기 쉽다. 피드백과 평가 과정에서도 차이가 발생한다. 상위 카스트 직원에게는 건설적 피드백과 성장 기회를 제공하는 반면, 하위 카스트 직원에게는 모호하거나 부정적인 평가가 반복되어 자발적 퇴사를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조직 내 생존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결국 승진 경쟁에서 밀려나게 한다. 사내 교육이나 리더십 프로그램 선발에서도 은연중에 선입견이 작용한다.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은 고객 응대에 적합하지 않다’, ‘관리직은 특정 이미지에 맞아야 한다’는 암묵적 기준이 하위 카스트 직원의 기회를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심지어 사내 괴롭힘이나 차별적 발언이 벌어져도, 이를 문제 삼는 것 자체가 "팀워크를 해치는 행동"으로 간주되면서 피해자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로 인해 하위 카스트 직원은 차별을 참고 견디거나, 조용히 회사를 떠나는 길 외에는 선택지가 없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능력 중심 조직으로 가기 위한 변화의 조건
기업이 진정으로 능력 중심 문화를 지향하려면, 단순한 성과 평가 시스템 정비를 넘어 조직 문화 전반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먼저, 승진과 평가 과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하고, 비공식 추천이나 네트워크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다층적인 차별 감수성 교육을 정기적으로 시행해, 무의식적 편견이 평가나 인사에 스며드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단순히 인권교육 차원을 넘어, 실질적인 사례 기반 학습과 조직 내 토론 문화를 활성화해야 한다. 관리자급 직원에 대해서는 별도의 리더십 감수성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멘토링과 네트워킹 프로그램에서도 포괄성을 높여야 한다. 기존 상위 카스트 중심 네트워크를 깨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직원이 서로 멘토-멘티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조직 차원의 매칭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 기반 접근이다. 직급별, 카스트별 승진율, 이직률, 교육 기회 참여율 등을 정기적으로 분석하고 공개함으로써, 조직 내 불평등 구조를 가시화하고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진정한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조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카스트 없는 승진, 배경을 넘어선 인정이 이루어질 때, 기업은 비로소 최고의 인재를 확보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