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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의 벽에 갇힌 삶, 여성이라는 이중 차별의 교차점

by 지식머니부자 2025. 4. 23.

카스트 남성 이미지


인도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카스트라는 또 하나의 사회적 족쇄가 얹힐 때, 그 삶은 더욱 복잡하고 억압적인 구조 속에 놓이게 된다. 이 글에서는 카스트와 젠더가 교차하는 구조적 차별을 중심으로, 하위 카스트 여성들이 겪는 이중 차별의 실태와 그 영향을 조명하고자 한다.

여성이자 달리트, 존재 자체로 취약한 정체성

하위 카스트 여성들은 두 개의 억압 구조 안에 살아간다. 하나는 인도 사회 전반에 걸쳐 존재하는 가부장제이며, 다른 하나는 수천 년 동안 고착된 카스트 제도다. 이 둘이 결합될 때, 여성은 단지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하위 계층의 여성’으로서 훨씬 더 심각하고 복합적인 차별에 노출된다. 달리트 여성은 출생 시점부터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되며, 그 정체성은 종종 사회적 투명인간처럼 취급된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교육 기회에서 배제되기 쉽고, 성적 대상화의 위험에 더 자주 노출된다. 성폭력에 노출되었을 때조차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그들의 고통을 ‘하찮은 일’로 치부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심지어 마을 공동체 내부에서도 보호보다는 침묵이 강요된다. 상위 카스트 남성에게 성폭력을 당한 경우, 여성 본인의 명예보다는 공동체 전체의 체면이 먼저 고려되며, 피해자는 두 번, 세 번 피해를 입는다. 이러한 상황은 단지 범죄 문제를 넘어, 사회구조가 특정한 계층과 성별에 어떻게 불공정하게 작동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경제적 차원에서도 달리트 여성은 매우 취약하다. 생계를 위해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지만, 노동권 보장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으며, 고용주나 현장 관리자에 의한 성적 착취가 벌어지는 사례도 존재한다. 이중의 소외는 곧 생존의 위기로 이어지며, 자립 가능성을 끊임없이 저해한다.

공적 공간에서 배제되는 이중 구조

카스트와 젠더의 교차는 공공 영역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하위 카스트 여성은 지역 회의나 학교, 병원, 법원 등 다양한 공적 공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그 자리에 앉는 것조차 도전이며, 설령 참여한다 하더라도 그 의견이 존중되거나 반영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존재는 허락되되 영향력은 없는’ 구조적 배제의 또 다른 형태다. 정치 분야에서도 이들의 현실은 다르지 않다. 인도는 여성과 달리트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할당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리 정치’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즉, 선출된 달리트 여성은 남편이나 마을의 상위 남성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며, 실질적인 권한은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대표성’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구조다. 또한 미디어나 문화 콘텐츠에서도 하위 카스트 여성은 종종 왜곡된 이미지로 그려지거나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브라만 여성의 서사는 종종 강인하고 독립적인 이미지로 소비되지만, 달리트 여성은 여전히 수동적 피해자 혹은 배경 인물로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그들의 서사를 지워버리고, 존재 자체를 소외시키는 문화적 폭력이다. 이러한 다층적 배제는 하위 카스트 여성의 자기 정체성 형성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보이지 않는 존재’인지를 체감하면서, 말하기보다 침묵을, 도전보다 순응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곧 변화의 주체가 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로 이어진다.

말하기 시작한 여성들, 침묵을 깨는 목소리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트 여성들은 점차 침묵을 깨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지역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연대하며, 공공의 장에서 직접 목소리를 내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페미니즘 운동과 달리트 인권운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문화적 실천이 등장하고 있다. 일부 달리트 여성들은 시인, 작가, 유튜버, 사회운동가로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전하고 있으며, 이는 하위 카스트 여성의 삶이 더 이상 타자에 의해 해석되지 않고, 스스로 서술되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표현의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정체성의 탄생이자 사회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또한 여성 중심 NGO와 시민단체들은 달리트 여성의 자립을 위해 직업 교육, 법률 상담, 심리 치료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들은 경제적·사회적 독립을 통해 기존 구조를 스스로 깨고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고 있다. 교육을 받은 달리트 여성들이 교사, 보건요원, 지역 리더로 활동하며 새로운 롤모델이 되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궁극적으로 이중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지 여성 정책, 혹은 하위 카스트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달리트 여성’이라는 고유한 위치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맞춤형 정책과 문화적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카스트와 성별이라는 두 벽을 동시에 허물어야만, 인도 사회는 진정으로 평등하고 다층적인 포용성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