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종교는 개인의 삶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이며, 사원은 그 신앙심이 집약된 공간이다. 그러나 카스트 제도는 이러한 종교 공간에서도 평등을 허용하지 않았다. 특정 계층만이 사원에 자유롭게 출입하고 종교 의례를 주도할 수 있었으며, 하위 계층은 종종 배제되거나 제한된 접근만이 허용되었다. 이 글에서는 인도 사원 출입 제한의 역사와 현실, 그리고 변화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사원의 신성함과 카스트 위계의 결합
사원은 힌두교에서 신과 인간이 만나는 가장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진다. 사제인 브라만이 의식을 주관하고, 신상을 모신 성소를 관리하며, 참배객들은 그 앞에서 기도와 제물을 바친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종교적 신성함이라는 이름 아래, 철저한 카스트 위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사원의 중심 구역, 특히 신의 형상을 모신 가르바그리하(garbhagriha)는 오직 브라만 혹은 상위 카스트만이 출입할 수 있었고, 하위 계층은 사원 외곽이나 별도의 공간에서 참배를 해야 했다. 불가촉천민이라 불리는 달리트는 아예 사원 출입 자체가 금지되었으며, 신의 형상 앞에 설 자격조차 없다고 여겨졌다. 이는 단지 종교의식의 문제를 넘어, 개인의 인간적 존엄성과 권리를 부정하는 구조였다. 특히 남인도의 여러 대형 사원들은 방문자의 카스트를 확인하거나, 이름만으로 계층을 추정하여 출입을 제한한 기록이 남아 있다. 심지어 신에게 바칠 제물이나 물조차 달리트가 만지면 ‘더럽혀진 것’으로 간주되었고, 그 이후엔 의식을 다시 해야 한다는 식의 종교적 고정관념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러한 전통은 마을의 사소한 사당에서부터 거대한 유명 사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작용하며, 신앙을 통한 위로조차 계층의 구분 아래 이루어졌던 것이다.
현대의 사원, 바뀌는 듯하면서도 남은 벽
인도 헌법은 종교의 자유와 평등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카스트 차별을 명백한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원이라는 공간에서의 카스트 차별은 여전히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특히 농촌이나 전통적인 지역에서는 달리트의 사원 출입을 반대하거나, 심지어 신체적 위협을 가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도시의 일부 사원들은 형식적으로는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 있으나, 실제 운영에서는 브라만 사제 중심의 구조가 여전하며, 하위 카스트가 의례에 참여하거나 봉사자로 활동하는 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일부 사원에서는 달리트가 직접 신상 앞에 서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존재하고, 같은 공간에서 기도를 올리는 것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참배객도 있다. 게다가 사원 내 제사나 특별 축제에서 주요 역할을 맡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위 카스트 출신이며, 전통적 지위를 바탕으로 세습적 역할을 이어간다. 이는 종교적 권위를 특정 계층에 집중시켜, 구조적인 배제를 유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현실은 단지 개인의 신앙을 방해할 뿐 아니라, 종교 공간이 공동체 회복의 중심이 되지 못하도록 만든다. 종종 뉴스에서는 달리트 청년들이 사원 입장을 시도하다 마을 사람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하거나, 마을 회의에서 공개 사과를 강요받는 사건도 보도된다. 이는 법과 현실의 괴리, 그리고 종교라는 이름 아래 은폐된 차별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종교의 본질을 되찾기 위한 종교적 차별
하지만 희망은 있다. 일부 진보적인 사원과 단체들은 ‘열린 사원(Open Temple)’ 운동을 통해 누구나 신의 앞에서 동등하다는 원칙을 실현하려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마하라슈트라 주의 한 힌두 사원은 브라만 사제를 대신해 달리트 여성 사제를 임명하며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고, 이는 종교계 내부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불교, 시크교, 기독교 등 인도의 비힌두 종교들은 비교적 평등한 종교 구조를 갖고 있어, 많은 달리트들이 이러한 종교로 개종하며 신앙의 자유를 추구하고 있다. 이는 카스트 해방의 일환이자, 신 앞에서의 인간 평등을 회복하려는 실천적 행위로 해석된다. 정부 역시 종교기관에 대한 감사 강화와 차별 행위 신고 시스템 개선을 통해 제도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모두를 위한 사원’이라는 새로운 건축 모델을 지원하기도 한다. 종교 교육을 담당하는 일부 기관은 카스트 차별이 힌두 경전의 본래 뜻이 아니라는 해석을 확산시키며, 신앙과 평등이 공존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신은 모든 이의 것이어야 한다. 인간이 만든 제도와 차별이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어선 안 된다. 사원이 진정한 종교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개방을 넘어서 마음의 장벽까지도 허물어야 한다. 누구나 신 앞에 설 수 있고, 누구나 그 공간에서 위로받을 수 있어야만, 종교는 인간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잇는 본래의 역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