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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사회의 음식 문화와 카스트 차별의 이면

by 지식머니부자 2025. 4. 23.

카스트 문화 이미지

음식은 한 사회의 정체성과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이지만, 인도에서는 카스트 제도가 음식 선택과 조리, 식사 방식에까지 깊숙이 관여해 왔다. 이 글에서는 카스트에 따른 음식 차별이 어떻게 존재해 왔는지, 그것이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변화 가능성은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본다.

음식을 둘러싼 카스트 규범의 기원

카스트 제도는 인도인의 식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단순히 누가 무엇을 먹는지를 넘어서, 누가 누구와 함께 먹을 수 있는지, 누가 조리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까지 규율해온 제도이다. 전통적인 힌두교 사회에서는 브라만과 같은 상위 카스트는 채식주의를 고수하며 ‘순결한 음식(pure food)’만을 섭취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이들은 동물성 식품이나 마늘, 양파 같은 자극적인 음식조차 멀리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하위 카스트나 불가촉천민인 달리트는 지역과 직업 특성상 육식을 포함한 다양한 음식을 섭취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식습관은 ‘불결한 것’으로 간주되어 비하와 배척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상위 카스트 사람들은 하위 카스트가 조리한 음식을 거부하거나, 같은 식기나 주방을 사용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문화가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이러한 음식 규범은 단순한 위생 개념이 아니라, ‘종교적 순수성’과 ‘신분 유지’라는 명목 아래 형성된 것이다. 심지어 많은 힌두 사원에서는 브라만만이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방문자조차도 특정 카스트 이상만 입장해 음식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음식은 계층을 구분 짓는 강력한 사회적 장치로 작용해 왔다.

일상생활 속 음식 차별의 현실

오늘날에도 인도 사회에서는 음식과 관련된 미묘한 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농촌 지역이나 보수적인 도시 커뮤니티에서는 같은 식탁에 앉는 행위조차 카스트 간의 신분 차이를 넘는 ‘금기’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위 카스트 아이들이 학교 급식에서 다른 아이들과 분리된 공간에서 식사하거나, 교사가 달리트 학생의 도시락을 피하는 사례는 지금도 뉴스에서 종종 다뤄진다. 결혼식이나 제사와 같은 공동 식사 자리에서도 이러한 차별은 명확히 드러난다. 일부 공동체에서는 달리트를 아예 초대하지 않거나, 초대하더라도 별도의 접시와 컵을 사용하게 하며, 식사 시간도 다르게 배정하기도 한다. 도심의 음식점에서도 특정 지역, 특정 요리사는 카스트에 따라 음식을 조리하거나 서빙하는 권한에 제약을 받는 일이 벌어진다. 심지어 직장 내 회식 자리에서도 ‘누가 요리했는가’, ‘누구의 손을 거쳤는가’에 따라 음식을 기피하거나 배제하는 현상이 관찰된다. 이는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은연중에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며 공동체 내 신뢰와 평등 의식을 훼손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 음식은 사람을 이어주는 문화적 접점이 되어야 하지만, 인도 사회에서는 아직도 그것이 ‘선 긋기’의 수단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변화의 가능성과 문화적 전환

그렇다면 이러한 음식 차별은 사라질 수 있을까? 다행히도 일부 도시 지역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식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대학교 기숙사나 IT 산업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출신에 상관없이 함께 식사하고 음식을 나누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으며, 달리트 출신 셰프나 요리사가 미디어에 등장하면서 고정관념을 깬 사례도 늘고 있다. 또한 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다양한 인도 음식 문화가 소개되면서, 과거에는 비하받았던 지역 요리나 달리트 음식이 ‘전통의 가치’로 재조명되기도 한다. 유명한 푸드 블로거나 유튜버들이 카스트 구분 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식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음식은 사람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연결하는 것임을 증명해가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학교 급식 제도에서의 차별 방지 지침을 강화하거나, 공공행사에서 음식 제공 시 차별 요소가 개입되지 않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일부 힌두 사원은 이제 브라만 외에도 다양한 계층의 요리사가 봉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정 중이다. 음식이야말로 가장 평등한 행위 중 하나여야 한다. 누구나 배고픔을 느끼고, 누구나 음식을 통해 삶을 이어간다. 그 기본적인 행위마저 차별의 기준이 된다면, 그 사회는 결코 온전한 공동체가 될 수 없다. 음식은 신분이 아닌 인간을 위한 것이며, 카스트가 아닌 온정이 그 위에 담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