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사회에서 결혼은 단순한 개인 간의 결합이 아니라 두 가족, 더 나아가 두 계층 간의 연합을 의미한다. 특히 카스트 제도는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제한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하며,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 글에서는 카스트와 결혼의 관계,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과 변화의 조짐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전통적 결혼 제도에서의 카스트 규범
인도에서 결혼은 오랜 시간 동안 가족과 공동체가 주도하는 사건으로 여겨졌다. 개인의 사랑이나 자유 의지보다도, 결혼은 혈통, 신분, 종교적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카스트 제도는 이러한 구조를 공고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전통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카스트, 심지어 같은 자티(jati) 내에서 배우자를 찾는 것이 이상적인 결혼으로 여겨졌다. ‘엔도가미(endogamy)’라고 불리는 이 전통은 다른 카스트와의 결혼을 금기시하며, 특히 상위 계층일수록 더 엄격한 규율을 유지해 왔다. 이를 어길 경우 가족은 물론 공동체 전체로부터 배척을 당할 수 있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실제로 명예살인까지 발생하는 사례도 있었다. 여성의 경우는 더욱 제한적이었으며, 하위 카스트 남성과의 결혼은 여성과 그녀의 가족 전체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혼은 곧 가문의 명예, 사회적 지위, 경제적 이익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감정이나 인격적 궁합보다는 카스트와의 일치가 최우선으로 고려되었다. 중매결혼이 지배적이었던 이유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되었으며, 부모나 친척, 심지어 중매업자들은 신랑신부의 가문과 카스트를 철저히 검증한 후 결혼을 성사시켰다.
현대 인도에서의 결혼과 갈등
오늘날 인도는 헌법적으로 평등을 보장하고 있으며, 도시화와 교육 수준 향상, 정보 접근의 증가 등으로 인해 결혼 문화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 특히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사랑 결혼(love marriage)'이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다른 카스트 간의 결혼, 즉 '인터카스트 결혼(inter-caste marriage)'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 변화는 결코 순탄하지 않다. 인터카스트 결혼을 선택한 커플은 여전히 사회적 배척, 가족의 단절, 심지어 물리적 위협에 직면하기도 한다. 특히 농촌 지역이나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공동체 규범을 어긴 자에 대해 극단적인 조치가 취해지기도 하며,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 전반의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인터카스트 결혼 장려금 제도 등을 도입했지만, 사회적 인식 변화는 여전히 더딘 편이다. 많은 경우, 사랑 결혼은 도피와 단절, 불안정한 경제적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며, 가족과의 화해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특히 여성의 경우, 결혼을 통해 기대되는 사회적 보호망이 붕괴되면서 새로운 차별과 고립을 경험하기도 한다.
변화의 징후와 앞으로의 방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 사회는 변화하고 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카스트에 대한 인식은 점차 약화되고 있으며, SNS와 온라인 데이팅 플랫폼을 통해 개인의 선택권이 조금씩 확장되고 있다. 결혼은 점차 개인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행위로 자리잡아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전통적 카스트 제도의 경직성이 서서히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달리트 출신 작가나 활동가, 청년 유튜버, 사회운동가 등이 인터카스트 결혼의 긍정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여론을 환기시키고 있고, 일부 법조계 인사들은 인터카스트 부부에 대한 보호 조치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 카스트 간의 교류가 증가하고, 교육과 직장을 통한 관계 맺기가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은 점차 ‘출신’보다는 ‘사람’을 보기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진정한 의미의 결혼 자유는 단지 법적 허용을 넘어, 사회적 수용과 문화적 전환이 병행되어야 한다. 인도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와 평등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혼이라는 사적 영역에서조차도 개인의 자유가 존중받아야 하며, 그 첫걸음은 카스트라는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