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 제도는 단순한 신분 구조를 넘어 인도의 일상생활 전반에 깊숙이 작용해 왔다. 그중에서도 거주 지역의 구획은 카스트에 따라 명확히 분리되어 왔으며, 이는 물리적 공간에서의 차별과 사회적 거리감을 고착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이 글에서는 거주 지역 분리의 역사적 배경과 현재 모습, 그리고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다룬다.
카스트 역사적으로 고착된 공간의 위계
인도 사회에서 거주 지역은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니라 신분을 드러내는 물리적 지표였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마을이 자연스럽게 카스트에 따라 나뉘어 형성되었고, 이 구조는 수 세기에 걸쳐 유지되어 왔다. 브라만과 같은 상위 계층은 마을 중심이나 높은 지대에 위치한 넓고 깨끗한 공간에 살며, 교육 시설이나 사원, 공공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용이한 위치를 차지했다. 반면 수드라나 달리트 계층은 외곽, 하천변, 혹은 하수 근처와 같은 열악한 환경에 밀집되었고, 이는 명백한 사회적 구획이자 차별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지역 구분은 단순한 주거 형태의 차이를 넘어, 상호 교류와 이동의 제한까지 만들어냈다. 하위 카스트 출신이 상위 카스트 구역을 무단으로 지나거나, 심지어 그 구역의 물을 사용하거나 우물에 접근하는 것조차도 금지되었던 사례가 많았다. 이는 공간을 통한 차별이 단순한 무의식적 결과가 아니라, 의도된 배제와 통제의 수단으로 작용해 왔음을 보여준다. 공간의 위계는 인도의 전통 도시 설계, 사원 배치, 시장 구조 등에도 반영되었고, 이는 거주지와 경제적 기회, 사회적 네트워크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사회적 자원에의 접근성 차이는 단순한 주거 격차를 넘어 교육, 의료, 취업 등 전반적인 삶의 질에서 현저한 불균형을 만들어냈다.
현대 인도의 도시에서도 이어지는 분리
오늘날 인도는 도시화와 산업화, 민주주의의 발전을 거치며 명목상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지만, 실제 도시 구조 속에서도 카스트에 따른 공간 분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중소도시나 대도시 외곽의 저소득 주거지에서는 하위 카스트 계층이 밀집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은 상하수도 시설, 전력 공급, 도로 접근성 등 기본적인 인프라조차 부족한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부동산 거래에서도 카스트는 여전히 주요한 기준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일부 아파트 단지나 주택 협동조합은 공식적으로는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구매자나 세입자의 성이나 출신을 묻는 비공식 관행을 통해 하위 계층을 배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특정 지역은 ‘브라만 지역’ 혹은 ‘달리트 구역’으로 불리며, 이름만 들어도 누가 살고 있는지 대략 유추될 만큼 사회적으로 각인되어 있다. 심지어 교육기관 기숙사나 공공 임대주택에서도 카스트 기반 분리가 은근히 존재하며, 이는 주거 문제를 넘어 사회적 통합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거리상의 분리는 곧 생활권의 분리, 네트워크의 단절로 이어지며, 이는 자연스럽게 결혼, 직업, 정치 참여 등 삶의 전반적인 기회 차이를 확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처럼 공간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급장’으로 기능하며, 개인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자신의 카스트와 주소가 사회적 판단의 기준이 되는 현실은 완전히 극복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다.
통합을 위한 시도와 남은 과제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인도 정부와 시민 사회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달리트 주택 정책’은 하위 계층에게 도시 내 공공 주거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공간적 통합을 유도하려는 시도이다. 또한 몇몇 대도시에서는 혼합형 주거 단지를 설계하여 계층 간의 물리적 장벽을 줄이고, 아이들이 같은 학교와 놀이터를 공유하게 하는 도시계획을 실험 중이다. 비영리단체나 종교 공동체 또한 혼합 거주 모델을 도입해 실질적인 교류를 늘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청년층을 중심으로는 카스트보다 능력과 가치 중심으로 이웃과의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아직 대도시 일부에 한정되어 있으며, 전체 사회 구조를 바꾸기에는 매우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거주 지역 분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재배치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정한 변화는 교육, 문화, 미디어를 통한 인식 개선과 지역사회 내 공감대 형성이 병행되어야 하며,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 자체가 차별을 전제하지 않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특히 건축과 도시계획 단계부터 포용성과 다양성을 중심에 두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카스트에 따른 거주 분리는 단지 ‘누가 어디에 사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사회의 중심에 접근할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공간의 해방 없이는 진정한 사회 통합도 존재할 수 없기에, 인도 사회는 이제 더 이상 침묵이 아닌 선택의 변화를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