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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스트 결혼 후 가족 내 역할 차별 이미지


    결혼은 두 사람이 맺는 동반자 관계이자, 양가 가족이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되는 사회적 계약이다. 그러나 인도 사회에서는 카스트가 결혼 이후 가족 내 역할과 지위에도 영향을 미치며, 특히 하위 카스트 출신 배우자는 가족 내 의사결정권, 감정표현, 친족 관계 형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결혼 이후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카스트 기반 역할 배제의 양상을 살펴본다.

    배우자의 출신에 따라 나뉘는 가족 내 위치

    상위 카스트 가정에서 하위 카스트 출신과 결혼한 경우, 그 배우자는 단지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 ‘타자’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여성 배우자의 경우, 시댁에서 가사노동, 봉사, 돌봄 등의 역할에 집중되며, 가족 행사나 외부 모임에서는 공식적인 참여 기회를 제한받는다. 이러한 배제는 일상적인 언행에서도 나타난다. 이름을 부를 때 경칭을 생략하거나, ‘우리 집안 출신이 아니니 잘 모를 거다’는 식의 언급이 반복되며, 하위 카스트 배우자는 무언의 열등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심지어 일부 경우, 가족사진이나 계보에서 의도적으로 제외되거나, 성씨 변경을 강요받기도 한다. 또한 자녀 양육에 있어서도 갈등이 발생한다. 조부모가 손주의 이름, 교육 방향, 종교의식 등에 있어 상위 카스트 기준을 강요하며, 하위 카스트 배우자의 의견은 무시되기 쉽다. 이는 단순한 가족 간 의견 차이를 넘어서, 신분 구조에 따른 권력 배분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하위 카스트 배우자는 자신이 진정한 가족의 일원이 아니라, 조건부로 받아들여진 존재라는 자각 속에서 위축되며, 정서적 고립감을 겪게 된다.

    의사결정에서의 배제와 친족 관계의 단절

    가족 구성원 간의 주요 결정은 결혼, 교육, 재산, 간병, 이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지며, 이는 가족 내 권력 구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다. 그러나 하위 카스트 배우자는 이러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기 쉽고, 논의의 당사자가 아닌 수동적 청자 역할에 머물게 된다. 예를 들어 집을 새로 구입하거나, 자녀의 진로를 결정할 때, 상위 카스트 가족 구성원들만의 모임에서 결정이 내려지고, 하위 카스트 배우자에게는 “이미 정해졌으니 따르라”는 통보만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결혼을 통한 통합이 아니라, 위계의 연장선상에 놓인 생활 구조다. 또한 친족 행사, 제례, 명절 모임 등에서도 하위 카스트 배우자는 중심에 서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머무른다. 일부 경우에는 배우자의 친정(하위 카스트 가정)과의 교류를 제한하거나, 자녀가 외가 가족을 만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단절은 가족 내 정서적 신뢰 형성을 어렵게 만들고, 부부간의 관계마저 소원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동시에 하위 카스트 배우자는 두 집단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과 소속감 결여를 경험하게 된다.

    진정한 가족이 되기 위한 조건은 신분이 아니다

    가정은 가장 사적인 공간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가치와 권력이 재생산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가족 내 카스트 차별은 단순한 문화 차이를 넘어, 사회 전체의 평등과 민주주의 실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첫째, 결혼 이후 가족 통합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결혼 전후 상담 제도에 가족 감수성 교육과 카스트 차별 금지 조항을 포함시켜야 하며, 배우자 양가 가족 모두가 평등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커뮤니티 기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가정 내 역할과 권한 분배에 있어 성별과 신분이 아닌 능력과 상호 존중을 기준으로 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결혼생활 내 주요 결정은 반드시 부부가 동등하게 참여해야 하며, 그 의견은 출신 배경과 무관하게 존중되어야 한다. 셋째, 국가와 지방정부는 혼인 이후 가정 내 차별 피해 사례에 대한 상담창구와 법률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하며, 가정 내 은폐된 차별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야 한다. 가족은 ‘출신’을 따지는 구조가 아니라, ‘신뢰’로 연결된 공동체여야 한다.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같은 이름으로 불리며,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 그것이 진정한 가족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더 이상 카스트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