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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사회 이동의 사다리이자, 빈곤과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그러나 인도 사회에서는 고등교육 진학 과정에서조차 카스트에 따른 격차가 존재하며, 하위 카스트 학생들은 입시 준비 단계부터 진학 이후까지 다양한 형태의 배제와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고등교육 진입 과정에서 드러나는 구조적 차별과 그 영향력을 살펴본다.
입시 준비부터 불평등하게 시작되는 교육
고등교육의 출발점은 입시지만, 하위 카스트 학생들은 입시를 준비하는 환경 자체에서 차별을 겪는다. 우선 학업 지원 자원이 현저히 부족한 지역에서 성장하는 경우가 많고, 학교의 교사 배치와 교육 질 또한 상위 카스트 지역에 비해 낮은 편이다. 사교육을 통한 입시 준비가 중요한 경쟁 요소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하위 카스트 가정은 입시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유명 입시 학원, 모의고사 시스템, 입시 전략 컨설팅 등의 서비스를 활용하지 못하고, 학교 수업에만 의존해야 하는 현실이 반복된다. 또한 일부 교사들은 하위 카스트 학생에게 시험 응시 자체를 만류하거나, ‘너는 취업형 고등학교나 가는 게 낫다’는 식으로 가능성을 제한하는 언행을 하기도 한다. 이는 학습 동기 저하로 이어지고, 실제 응시자 수 감소로 직결된다. 입시 성적 외에도 면접, 자기소개서, 추천서 등의 과정에서 하위 카스트 학생은 문화 자본의 부족으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고등교육 기관에서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고등교육 계속되는 구조적 차별
고등교육기관에 입학한 이후에도 하위 카스트 학생은 다양한 형태의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게 된다. 가장 흔한 형태는 “할당제 입학자”라는 낙인이다. 인도에서는 일정 비율의 자리를 하위 카스트 학생에게 배정하는 ‘예약제(Reservation)’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 제도를 통해 입학한 학생은 동급생이나 교수에게 능력보다는 ‘특혜’로 여겨지기 쉽다. 이는 수업 참여에 대한 위축, 동아리 및 그룹 활동에서의 소외, 기숙사 내 따돌림 등으로 이어지며, 정서적 스트레스와 학업 부진의 원인이 된다. 일부 대학에서는 하위 카스트 학생이 강의 중 발언하거나 질문을 하면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반응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장학금이나 취업 연계 프로그램 참여에서도 차별이 발생한다. 추천서 작성, 교수와의 멘토링, 인턴십 연결 과정에서 비공식 네트워크가 작동하고, 상위 카스트 학생들이 우선권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같은 학교 안에서도 불균형한 기회가 배분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심지어 캠퍼스 내 일부 동아리나 커뮤니티는 특정 배경의 학생만 가입을 허용하거나, 활동 자체가 암묵적으로 ‘상류 카스트 문화’에 기반한 방식으로 운영되어 하위 카스트 학생에게 위화감을 준다. 이로 인해 고등교육기관이 포용적 공간이 되기보다, 또 다른 위계 재생산의 장소가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출신과 관계없는 진학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등교육 진학의 평등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입시 이전부터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첫째, 하위 카스트 밀집 지역에 질 높은 공교육 인프라를 집중 투자하고, 우수 교사 배치 및 학습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입시 준비 단계에서의 구조적 격차를 완화할 수 있다. 둘째, 입시 과정의 평가 방식에서 문화적 자본이나 언어적 능력에 치우친 기준을 지양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전형을 도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 기반, 학교 성적 상승률, 공동체 참여 활동 등 다양한 배경을 고려하는 평가 시스템이 필요하다. 셋째, 대학 입학 이후에는 ‘할당제 입학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줄이기 위한 커리큘럼과 인권 감수성 교육을 전교생 대상으로 운영해야 한다. 교수진 역시 학생을 능력 중심으로 바라보고, 정기적인 차별 감수성 워크숍을 수강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넷째, 기숙사 배정, 학내 활동, 장학금 운영 등에서 카스트를 이유로 한 배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학교 내부의 감시 체계와 익명 신고 시스템을 도입하고, 신고 시 즉각적인 중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은 신분을 바꾸는 힘을 가진다. 그러나 그 교육조차 신분에 의해 제약된다면, 우리는 가장 강력한 평등의 도구를 잃는 셈이다. 누구나 출신을 묻지 않고 입학하고, 누구나 동등하게 배움의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고등교육 환경이야말로 진정한 사회 정의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