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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스트 차별 경험 이미지


    이민은 새로운 삶과 기회를 향한 도전이다. 많은 인도 출신들이 더 나은 교육, 직업, 삶의 질을 위해 국외로 이주하고 있지만, 카스트라는 오래된 신분 체계는 국경을 넘어선 후에도 이민자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 글에서는 국제 이민 과정에서 하위 카스트 출신 이민자들이 겪는 차별과 배제의 현실을 살펴본다.

    해외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출신 배경

    겉으로 보기에는 인도 국적을 가진 이민자들은 모두 ‘동등한 디아스포라’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카스트 기반의 위계와 구분이 작동하고 있다. 특히 북미, 유럽, 중동 등으로 이주한 인도계 커뮤니티 안에서는 출신 성(姓), 고향, 종교적 전통, 가족 계보 등을 통해 상대방의 카스트를 추정하고, 그에 따라 교류 범위를 나누는 경향이 존재한다. 하위 카스트 출신 이민자는 지역 커뮤니티 모임, 종교 단체, 문화 행사 등에서 배제되거나 주변부로 밀려나며, 상위 카스트 중심의 네트워크에 접근하기 어렵다. 이는 취업, 정보 공유, 자녀 교육, 비즈니스 기회 등 다양한 생활 영역에서 불이익으로 이어진다. 특히 고용 과정에서 ‘내부 추천’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이민 사회 특성상, 이러한 배제는 실질적인 기회 제한을 의미한다. 이러한 차별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하위 카스트 출신은 ‘어느 커뮤니티에서 온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의심받고, 신뢰 형성에 더 많은 시간을 요구받는다. 이는 단지 사회적 불이익을 넘어, 자존감과 소속감에 심각한 상처를 남긴다.

    이민 사회 내 카스트 차별의 다양한 양상

    카스트 차별은 단지 인간관계에 그치지 않고, 교육과 고용, 종교, 거주지 선택 등 실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일부 힌두 사원은 운영진이나 제례 담당자를 상위 카스트 중심으로 구성하며, 하위 카스트 출신은 신도임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참여만 허용된다. 이는 종교적 차별을 해외에서까지 재현하는 예다. 대학 캠퍼스 내에서도 문제가 드러난다. 미국 내 일부 대학교에서는 인도계 학생들 사이에서 카스트에 따른 모임 분리, 룸메이트 배정 꺼림, 동아리 배제 등의 사례가 보고되었으며, 이는 국제 인권 단체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에 따라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에서는 카스트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제도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인도계 고용주나 상급자가 있는 기업에서는 카스트 출신 배경에 따라 업무 배치나 승진 기회가 달라지는 사례가 있으며, 특히 IT 산업처럼 인도계 종사자가 많은 분야에서 이러한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신고를 해도 ‘문화적 오해’로 치부되거나, 내부 해결을 유도하며 공식적인 대응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더불어 결혼 중개 서비스나 커뮤니티 기반 앱에서도 카스트 필터링이 암암리에 작동하며, 하위 카스트 출신은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단지 개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에 뿌리 깊은 차별 구조가 재생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경을 넘어선 평등한 삶을 위해

    국제 이민이 진정한 자유와 기회의 통로가 되기 위해서는, 출신에 따른 낙인과 차별이 어디서든 작동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이민자 커뮤니티 내부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카스트 기반 배제를 유지하는 내부 질서를 해체하고, 다양한 출신이 공존할 수 있는 네트워크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공공기관과 고등교육기관은 카스트 차별을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신고 절차를 익명성과 안전성이 보장된 형태로 운영하여 피해자가 불이익 없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근 일부 대학과 기업이 ‘카스트 포함 반차별 정책’을 도입한 것은 긍정적인 변화의 신호다. 종교 단체와 커뮤니티 센터 역시 개방성과 포용성을 강화해야 한다. 리더십 구성의 다양성 확보, 행사 참여의 평등 보장, 의례의 개방적 운영을 통해 신앙과 문화 활동이 차별의 도구가 아닌 치유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민 사회 내 ‘침묵의 구조’를 깨뜨리는 일이다. 카스트 차별이 ‘해외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허구를 넘어서, 실제 문제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국경을 넘어선 삶에서도 출신으로 구분되지 않는 사회, 어디서든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세계. 그것이 진정한 이민의 의미이며, 모두가 향해 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