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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은 시민 누구에게나 동일한 조건으로 제공되어야 할 공공재다. 그러나 인도 사회에서는 버스, 기차, 오토릭샤 같은 일상적인 교통수단조차 카스트에 따라 이용 경험이 달라지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대중교통 시스템 속에 내재된 카스트 기반 차별의 양상과 그 구조적 문제를 살펴본다.
버스와 기차 좌석에서 벌어지는 위계
전통적으로 인도에서는 공공장소에서의 좌석 배치조차 신분 질서를 반영해 왔다. 대중교통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차별이 반복되고 있다. 일부 지역의 로컬버스에서는 하위 카스트 승객이 특정 좌석에 앉는 것을 눈치 보거나, 상위 카스트 승객이 ‘자리를 비우라’며 은근한 압박을 가하는 일이 발생한다. 기차에서는 특히 장거리 열차의 쿠페 배정에서 차별이 발생한다. 하위 카스트 성씨를 가진 승객이 동승자에 의해 거부당하거나, 자리를 바꾸기를 요구받는 사례가 존재한다. 이는 공식 규정이 아닌 승객 간의 암묵적인 카스트 인식이 작동하는 경우로, 대중교통이라는 공공 공간에서도 차별이 만연함을 보여준다. 또한 하위 카스트 승객이 특정 구역의 좌석에 앉았다는 이유로 언쟁이 벌어지거나, 승무원이 편파적으로 개입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으며, 이는 하위 카스트 이용자에게 대중교통 자체가 불안한 공간이 되는 원인이 된다.
이용 태도, 서비스 접근성에서도 드러나는 격차
대중교통 이용에서의 차별은 좌석 문제를 넘어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하위 카스트 출신 운전사나 안내원은 승객으로부터 무시당하거나, 사소한 실수에도 과도한 항의를 받는 일이 많다. 이는 단순한 서비스 불만이 아니라, 신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서비스 종사자에게 전가되는 구조적 문제다. 또한 일부 마을이나 지역에서는 하위 카스트 거주지를 아예 통과하지 않는 버스 노선이 존재하며, 주민들은 교통권 자체에서 배제된다. 이는 단순한 노선 운영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 회피와 배제의 논리에 따라 결정된 결과일 수 있다. 승차권 발급이나 예약 서비스에서도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 일부 지역 역에서는 하위 카스트 성을 가진 이용자가 정보 부족으로 부당한 가격을 지불하거나, 직원의 부정확한 안내로 예약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전환이 이뤄졌다고는 하나, 온라인 플랫폼 접근성의 격차 역시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이처럼 대중교통은 외형상으로는 평등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용자 간 상호작용, 서비스 구조, 지역 운영 방식 등을 통해 신분 기반의 위계가 재현되고 있다.
모두를 위한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과제
대중교통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도시의 평등성과 포용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다. 카스트에 따른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운영적, 문화적 측면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대중교통 종사자 대상 인권 감수성 교육을 강화하고, 승객 간 분쟁 발생 시 승무원이 중립적이고 원칙에 따라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상호 존중 문화가 자리 잡도록 하는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다. 또한 교통 노선 설계 시 하위 카스트 거주 지역을 배제하지 않고, 공정한 접근성을 보장하도록 지자체와 협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 주민 의견을 반영한 노선 신설 및 배차 확대 정책이 요구된다. 승차권 발급 시스템에서는 비차별적 접근을 위해 주민 교육을 확대하고, 키오스크와 모바일 앱 등에 음성 안내, 쉬운 UI 등 접근성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이와 함께 교통민원센터를 통해 차별 신고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반복적 차별 사례에 대해서는 경고 및 벌점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의 변화다. 같은 노선, 같은 요금을 내고 타는 대중교통에서 누구도 출신을 의심받지 않고, 누구도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며, 누구든 안심하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어야 한다. 카스트 없는 교통, 출신을 묻지 않는 좌석. 그것은 단지 교통의 평등이 아니라, 인도 사회 전체가 나아가야 할 기본적인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