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복은 단순한 신체 보호 수단을 넘어, 신분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문화적 상징이다. 인도 사회에서는 특히 카스트 제도가 오랜 시간 동안 옷차림과 외모까지 통제해 왔다. 이 글에서는 카스트에 따른 의복 규범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 문화적 기원과 현대 사회에서의 지속 및 변화 양상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전통적 카스트 질서와 복장 규범의 연결
인도 사회에서 의복은 단순히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개인의 카스트를 구분하는 중요한 지표로 여겨져 왔다. 고대부터 힌두교 사회는 의복을 포함한 외모 전반을 ‘순결함’과 ‘불결함’이라는 개념으로 나누었으며, 이는 곧 신분의 높고 낮음을 가르는 도구로 기능하였다. 상위 카스트인 브라만과 크샤트리아는 깨끗하고 정갈한 백색 의복을 입고, 금실이나 자수를 더한 옷을 착용할 수 있었으며, 이는 종교적 권위와 사회적 권력을 동시에 상징했다. 반면 하위 카스트인 수드라나 달리트는 특정한 천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상의를 입는 것조차 금지되었던 시기도 있었다. 특히 여성은 상위 계층 앞에서는 어깨를 가리지 못하도록 강요받거나, 머리를 감싸지 못하게 하는 등 굴욕적인 의복 규정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단지 외모를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그들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려는 시도였다. 심지어 신발을 신는 행위조차도 계층에 따라 달랐다. 일부 지역에서는 달리트가 마을 길을 지날 때 신발을 벗어야 하며, 상위 카스트와 마주칠 경우 얼굴을 가리거나 시선을 피해야 했다. 옷, 장신구, 머리 모양, 심지어 사용하는 향수까지도 계층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고, 이는 결혼식, 제사, 축제 등 모든 사회 활동에서 철저히 적용되었다. 결국 이러한 의복 규범은 단지 미적 감각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 권력 구조를 시각적으로 고착시키는 기능을 수행한 셈이다.
현대 사회에서 지속되는 외모 중심의 위계
인도는 헌법적으로 모든 시민에게 평등을 보장하고 있지만, 현실 속 외모 규범은 여전히 카스트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농촌이나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특정 옷차림이나 장신구가 곧 카스트를 드러내는 지표로 인식되며, 이를 통해 은근한 차별이나 배제를 경험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달리트 여성이 상위 카스트 여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전통 사리를 입고 외출하거나, 화려한 금속 장신구를 착용했을 경우 ‘제 분수를 모른다’는 식의 비난을 받는 일이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마을 축제나 종교 행사 때 달리트 여성들이 색동 천이나 밝은 색상을 사용하는 것조차 문제가 되며, 심지어는 강제로 옷을 찢기거나 머리채를 잘리는 폭력 사태로 이어진 사례도 보고되었다. 남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공공장소에서 셔츠를 단정히 여미고 넥타이를 착용하거나, 고급 시계나 구두를 신는 등의 외모는 하위 카스트일 경우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이는 겉모습이 단지 개인의 취향이나 경제력의 표현이 아니라, ‘어울리지 않는 신분 상승 욕구’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취업 면접이나 공공 서비스 이용 시에도 외모를 통해 카스트를 추정하고 태도를 바꾸는 사례는 여전히 존재한다. 심지어 교육기관에서도 유니폼 착용 방식, 머리 모양, 액세서리 착용 여부 등이 학생 간의 은근한 차별을 유도하며, 그 뿌리에는 여전히 카스트에 대한 시선이 깔려 있다. 이는 단지 외모 규제 문제가 아니라, 평등권과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에도 어긋나는 구조다.
외모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변화의 움직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움직임은 분명 존재한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는 점차 전통적 외모 규범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옷차림과 자기표현을 지향하고 있다. 특히 SNS와 온라인 패션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스타일이 공유되면서, 특정 복장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달리트 출신 청년들이 패션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거나, 자신만의 의복 철학을 담은 브랜드를 만들면서 ‘카스트를 뛰어넘는 외모의 자유’를 실현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여성들은 스스로의 옷차림을 통해 억압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더 이상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닌 당당한 주체로서의 모습을 사회에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일부 지역 정부와 교육기관에서는 학교 교복의 다양성을 인정하거나, 머리 모양·장신구 착용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도록 교직원 교육을 강화하는 등 제도적 변화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영화, 광고, 드라마 등 미디어에서도 점차 다양한 계층과 외모의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외모 규범에 대한 대중적 인식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의복은 본래 자유로운 표현의 수단이어야 한다. 개인이 누구인지, 무엇을 믿고 추구하는지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인도 사회가 진정한 의미의 평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외모와 복장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위계부터 허물어야 한다. 그 변화는 옷의 겉모습을 넘어, 사람을 바라보는 눈부터 바꾸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