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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행사는 공동체를 하나로 묶고, 신앙을 실천하는 장이다. 그러나 인도 사회의 일부 종교문화에서는 카스트가 종교행사 내 역할 분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하위 카스트 시민은 동일한 신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의 중심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는 종교행사와 제례 속에 내재된 카스트 기반의 역할 배정 불균형을 살펴보고자 한다.
제례와 축제, 위계적 참여 구조의 고착
힌두교, 자이나교, 시크교 등 다양한 종교문화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의례다. 이 의례에는 제사장, 의식 준비자, 제물 운반자, 헌화자 등 다양한 역할이 존재하며, 전통적으로 이 역할 분배는 카스트 위계에 따라 구성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브라만(사제 계층)은 의식의 집전자로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며, 제례의 순서, 신에게 드릴 기도문, 제물의 종류까지 주도적으로 결정한다. 반면, 하위 카스트 신자는 제례에 단순 참관자로 참여하거나, 사원 외곽에서 봉사 역할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구조는 단지 전통의 문제로만 치부되기 어렵다. 일부 지역에서는 하위 카스트 신자가 사원 내부로 들어가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거나, 종교 축제에서 신상을 모시는 역할을 맡는 것을 공공연히 반대하는 사례가 존재한다. 이는 종교를 통한 통합이 아니라, 신앙조차 위계를 재생산하는 장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특정 마을이나 공동체에서는 축제나 절기 행사 때 하위 카스트가 지정된 구역에만 있을 것을 강요받거나, 행사 준비 및 청소 업무만을 배정받는 경우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사제 교육과 성직자 진입의 장벽
의례를 주도하는 종교지도자가 되기 위한 사제 교육과 성직자 제도에서도 카스트에 따른 제한은 두드러진다. 전통적인 사제 양성 기관은 브라만 출신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커리큘럼, 입학 기준, 수련 방식 모두 특정 계층에 최적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위 카스트 출신이 사제가 되기 위해 지원하더라도, 입학 단계에서 거부되거나, 수련 과정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주에서는 하위 카스트 사제가 특정 사원에서 의식을 집전하려 할 때 지역 주민의 반대에 부딪히며, 법적 보호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실현이 어려운 사례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미 활동 중인 하위 카스트 사제조차 종종 ‘진짜 사제’로 인정받지 못하며, 다른 사원으로부터 초청받는 기회나 주요 행사를 집전할 권한을 얻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결국 종교 의례와 제사의 중심은 여전히 상위 카스트의 전유물로 남아 있으며, 하위 카스트 시민은 신 앞에서조차 동일한 존엄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신앙 속에서 실현되어야 할 평등
종교는 차별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신앙은 평등, 연대, 인간 존엄의 가치를 가장 우선적으로 실현해야 할 영역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사원과 종교단체 차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사제 선발 과정에서 카스트에 따른 제한을 두지 않고, 모든 배경의 지원자가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국가 및 종교단체는 사제 교육기관의 커리큘럼에 다양성과 포용성 교육을 포함시키고, 하위 카스트 학생을 위한 장학금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지역 축제나 제례에서도 특정 역할을 상위 카스트가 독점하는 관행을 타파하고,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고 순번을 나누는 구조를 도입해야 한다. 행사 주최 측은 축제 기획 단계부터 카스트 구성을 고려해 균형 있는 역할 분배를 설계하고, 이를 의무화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신도들 역시 종교 공간에서의 위계 언어와 태도를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 하위 카스트 신도가 동등한 공간에서 기도하고, 제례를 집전하는 것이 ‘파격’이 아닌 ‘일상’이 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종교가 사회적 정의에 기여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신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신을 모시는 자리 역시,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신앙은 신분을 묻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신앙을 실천하는 공간 역시, 차별 없이 열려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