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형사사법 절차는 정의 실현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진다. 피해자는 보호받고, 피의자는 공정한 판단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인도 사회에서는 형사절차 전반에 걸쳐 카스트 기반의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며, 특히 하위 카스트 시민은 피해자임에도 보호받지 못하거나, 피의자일 경우 과도한 처벌을 받는 이중적 불이익을 경험한다. 이 글에서는 경찰 조사, 구금, 재판, 형 집행에 이르기까지 형사사법 절차 속 차별의 실태를 살펴본다.

    신고 단계에서부터 시작되는 배제와 침묵

    형사사법 절차는 일반적으로 피해자의 신고로 시작된다. 그러나 하위 카스트 피해자가 경찰서를 방문해 사건을 접수하려고 할 때, 첫 번째 장벽은 ‘무시’다. 경찰은 피해자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거나, 사건을 축소해 기록하고, 심지어 “그 정도는 참아라”, “사적인 문제다”라며 신고 접수를 거절하기도 한다. 특히 가해자가 상위 카스트일 경우, 경찰은 중립적이지 않고 가해자의 입장을 우선 고려하는 경향을 보인다. 증거 확보나 현장 조사에도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수사 지연이 반복된다. 이는 단지 업무 태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안에 내재된 카스트 편견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많은 하위 카스트 피해자는 결국 법적 대응을 포기하거나, 공동체 내 화해나 금전 합의로 문제를 마무리 짓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법적 보호 장치가 있음에도 그것을 활용할 수 없는 구조적 침묵이 형성되는 셈이다.

    피의자 신분일 때 더 가혹한 절차

    반면 하위 카스트 시민이 피의자 신분이 되었을 때는 상황이 정반대가 된다. 일부 경찰은 사소한 혐의에도 불구하고 강압적 조사를 진행하며, 변호사 선임이나 가족 통보의 기회를 충분히 보장하지 않는다. 특히 체포 직후 구타, 협박, 불법 구금 등 인권 침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며, 이는 지역 언론 보도를 통해 여러 차례 문제로 제기된 바 있다. 보석 심사나 구속 기간 결정에서도 편향이 발생한다. 같은 조건임에도 상위 카스트 피의자는 빠르게 보석이 허가되지만, 하위 카스트 피의자는 구속이 길어지거나, 법률 대리인의 조력을 충분히 받지 못해 구금 기간이 연장되기 쉽다. 이는 경제력의 차이뿐 아니라, 제도 내 관행의 차별적 작동이 작용한 결과다. 심지어 구치소나 교도소 내에서도 하위 카스트 수용자는 특정 작업에 배치되거나, 배식 순서에서 후순위로 밀리는 등의 미묘한 차별을 경험한다. 이는 단순한 ‘내부 질서 유지’를 넘어 신분 기반 배제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결국 같은 죄명, 같은 상황에서도 신분에 따라 처우와 절차가 달라지고, 이는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신뢰를 훼손한다.

    법 앞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과제

    형사사법 절차에서의 카스트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경찰 단계에서의 편향적 대응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신고 과정과 수사 절차를 디지털 기록화하고, 외부 감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하위 카스트 피해자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독립적 모니터링 기구의 개입이 가능해야 한다. 공공 변호인 제도를 실질화하여, 경제적 여건과 관계없이 하위 카스트 피의자도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변호사 배정, 준비 시간, 상담 보장 등의 항목을 명문화하고, 변호인의 성과를 정기적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법원은 판결문 작성 시 신분 편향 표현을 지양하고, 동일 혐의에 대해 처벌 수준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하위 카스트 관련 사건은 특별 감시대상으로 분류하여 사법 편향 여부를 검토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교도소 운영에서도 인권 기준을 강화하고, 수용자 간 차별을 방지하는 교육과 점검이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배식, 작업 배정, 접견 권리 등에 있어 신분을 기준으로 한 분리나 차별이 없도록 운영 지침을 개정해야 한다. 정의는 제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들의 의식, 그리고 사회 전체의 시선이 바뀔 때 비로소 실현된다. 법 앞의 평등은 선언이 아니라, 실천으로 증명되어야 한다.